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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추위
  • 작성자 : 심현녀(56)
  • 작성일 : 2023-11-18
  • 조회 : 37
  • 첨부파일 : 첫추위 .hwpx

첫추위

 

내일이 입동이다.

기상청에서는 입동 추위가 온다며 며칠 전부터 한파특보를 발령했다.

전 국민 특히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대비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한동안 포근한 가을 날씨 속에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엔데믹을 실감하며

나들이를 즐겼는데 이렇게 짧게 가을 잔치가 끝나는가 보다.

내일이면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삭풍(朔風)이 한반도를 덮치겠지.

나도 추위에는 약한지라 보일러를 점검하고 두툼한 옷과 내의를 챙기며

입동을 맞을 준비를 했다.

 

사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추위도

제 구실을 못하는 것 같다.

추운 겨울 함박눈이 쌓인 고즈넉한 설경을 구경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최근에는 경기도 북쪽지방에도 사과 농사가 가능하다고 하니 참 놀라운 일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했던 옛날에는

그 특성에 맞게 취미생활과 놀이를 즐겼다.

부채 하나만으로도 무더위를 견디고, 매서운 추위에는 따듯한 아랫목이나

화롯불 주위에 둘러앉아 가족과 이웃 간에 정을 나누며 긴 겨울을 보냈다.

혈기 왕성했던 시절에는 썰매나 스케이트를 지치며 추위를 이겨내기도 했지.

격세지감을 느끼며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첫추위를

아련한 기억 속에 떠올려 본다.

 

나는 6년 동안 십리나 되는 먼 길을 걸어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당시 시골에서는 친구들 아니면 동네 언니 오빠들과 함께 등하교를 했다.

매서운 추위도 한여름의 무더위도 그들과 함께 누렸기에

십리나 되는 등하교 길도 어렵지 않게 6년을 견디어 온 것 같다.

그때는 우둥상보다는 개근상이 더 의미가 깊고 칭찬도 받았다.

6년 개근상을 탄 1년 선배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 개근상에는 어머니께 수여하는 푸짐한 부상도 있었다.

매년 우등상만 받았던 나는 그 언니의 개근상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어쨌든 내 삶의 첫추위는 2학년 늦가을 입동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 날은 무엇 때문인지 친구들은 먼저 하교를 하고

나 혼자 십리길을 걸어서 가야했다.

일기예보도 없던 시절 아마 늦은 오후부터 살을 에는 듯한

시베리아 삭풍이 불어왔을 것이다.

학교를 출발하여 '6년 고개'로 불렀던 언덕을 내려가 벌판길로 접어들었다.

찬바람은 점점 세게 어린 나를 향해 불어왔다.

외투나 모자도 없는 8살 배기 소녀는 추위에 떨며

터저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눈물 범벅이 된 소녀는 소금 담배 가게가 있는 버스정류장 앞에 이르렀다.

그때 그 가게집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오시더니

한없이 울고 가는 나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분을 따라 부엌으로 갔다.

그분은 저녁 준비를 하시는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나를 아궁이 따듯한 불 앞에 앉혀놓고 얼어붙은 내 몸을 녹여주고

따듯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셨다.

얼마나 추웠을까 하며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두툼한 목도리로 내 목을 감싸주시며 장갑도 끼워주셨다.

그렇게 나는 또 먼길을 걸어 울지도 않고 얼지도 않은채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반가움에 엄마와 작은 언니는 나를 맞아주셨다.

그리고 다음날 그 목도리와 장갑은 어머니의 감사 인사를 담아

그 아주머니에게 돌려드렸다.

 

그 후 6학년이 되어 졸업할 때까지 나는 그분을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가끔 그 가게앞을 지날 때마다 그분을 멀리서 본 적은 있지만

일부러 가서 인사를 하거나 아는 채 하지는 않았다.

그냥 마음속으로 참 좋으신 분 가슴이 따듯한 분이구나 하고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될때까지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좀더 나이가 들어 세상을 돌아볼 시기가 되었을 때

첫추위가 오면 그 아주머니가 생생하게 떠오르곤 했다.

살아계시다면 한번 만나 뵙고 싶었다.

고향마을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만 있다면 찾아갈 수도 있겠지만

이미 고향은 딴 세상이 되어있었다.

그냥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아 첫추위가 올 때면

아련한 추억속에 그분이 보고 싶어진다.

 

내 삶의 감사함을 첫 경험으로 남겨주신 고마운 그 아주머니,

훗날 하늘나라에서 만날 수 있다면 두 팔 활짝 벌리어

이번에는 내가 먼저 꼬옥 안아드리고 싶다,

 

202311월 입동 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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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댓글 1

  • 홍정일(49)

    2023-11-19

  • '그때가 그립다'

    방죽의 버드나무와 버들강아지
    산으로 들로 냉이 달래 케어서
    망태에 담고 좋아했던 내 어린시절

    술도가 앞마당에
    아이들이 모여 당따먹기
    아주까리 잎에 봉숭아 물 들이던 곳

    쏟아지는 별빛아래
    멍석에 모닥불 피어놓고
    감자, 옥수수,개구리참외 꿀맛이어라

    동구 밖 시냇물 물장구치던
    그 아이들은 다 어디에
    모두가 그립다. 그 어린 시절이

    지금은 인생의 막바지 길에서
    무엇을 하고들 있을까!
    아,그때가 그립고 그립다,

    어린시절 외갓댁에서 지냈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

    아주 오래전에 나의 어린시절 생각이 나 써 놓았던 글이
    생각이나 올려 보았습니다.

    심현녀 후배님!

    댓글을 써서 올렸는데
    몇 번을 시도 해도 올라가지가 않아
    포기했어요.

    후배님의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잠시 머물러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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