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n, 어디있니? 

그 외에도 샨 가족과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이 참 많았다. 친정집 포도원으로 나들이 갔던 일, (그때 우리는 샨 처럼 포도를 씨와 껍질째 먹는 법을 알았다) 용산 미군부대를 방문하여 샨 가족과 함께 여러 행사에 참여했던 일, 산을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북한산 등산 갔던 일 등등 지금은 오래되어서 기억에서 멀어져간 추억거리가 참 많았다.

샨 아빠의 한국파견근무가 끝나고 돌아갈 때까지 샨은 한국문화를 많이 경험하면서 성장했다. 그중 가장 큰 수확은 태어난 지 한달 밖에 안된 여자아이(Margo)를 샨 부모님이 입양하여 샨에게 동생 삼아준 것이다. 마르고가 자라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샨 가족은 미국으로 떠났다. 공항에서 이별할 때 두 남매가 다정히 손잡고 출국장을 걸어 나갔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가슴 뭉쿨한 심정으로 마르고가 행복한 가정에 입양되어 감사하며 앞으로 미국 땅에 잘 적응하여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했다.

샨 가족과 이별하고 나는 한동안 우울증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가족을 만난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하니 나의 우울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07년인가 8년도에 샨 가족이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4반세기 만에 서초동 우리가 함께 살았던 곳에서 그들을 만났다.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카페가 시끄러울 정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어소통이 그리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하하호호 웃으며 옛날을 회상했다. 그동안 샨 엄마는 샨과 마르고가 자라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가끔 나에게 보냈기 때문에 훌쩍 커버린 신사 샨과 숙녀 마르고도 낯설지 않았다. 마르고는 제 모국에 와서 그런지 더 행복해 보였고 신나게 분위기를 리드하기도 했다. 우리는 근처 예술의 전당으로 자리를 옮겨 몰라보게 변한 서초동 주변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으며 또 담소를 나누었다. 각자의 바쁜 일정으로 인해 오랜 시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snail mail 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로부터 2년 후인가, 샨이 학교 논문 관계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어느날 혼자서 나를 찾아온 것이다. 우리는 샨이 좋아하는 삼계탕으로 점심을 먹고 우리 집으로 갔다. 그리고 옛날에 같이 점심 먹곤 했던 그 식탁에 앉아 차 마시고 하하허허 웃으며 그때를 회상했다. 샨은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자기 애인인데 아마 결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훤칠한 키에 갈색 머리의 아름다운 숙녀였다. 샨은 우리아파트 6층에서 내려와 옛날 그가 즐겨 놀았던 놀이터를 둘러보며 잠시 감회에 젖는 것 같았다. 다음에 우리는 전에 자주 올라갔던 뒷동산 법원단지 내 오솔길을 걸으며 내가 기억하고 있는 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끔 내 등에 업혀 오르기도 하고 잠자리 개미 벌레 등을 두려움 없이 만지며 자연 공부했던일 등) 또 유치원이 있던 RGH 경내(지금의 삼풍아파트)를 둘러보고, 샨이 살았던 이층집 주변도 구경했지만 이미 재개발이 되어 대형건물들로 가득했다. 비록 한 가족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 인상 지워진 나에 대한 기억, 한국에 대한 기억이 샨의 마음속에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성인이 된 샨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나를 대해주었고 따듯하고 친절한 매너를 잊지 않았다.

이후에도 샨 가족과 우리는 가끔 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굳이 비싼 국제전화로 연락하며 서로에게 부담 주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내 실수로 click 한번 잘못하여 컴퓨터에 저장된 이메일 사진 주소록 등 모두 날아가 버렸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의 일이다. 지금 같았으면 카톡이나 보이스톡으로 쉽게 소식 전할 수 있었을텐대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샨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기억들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샨도 왜 갑자기 이메일이 안될까 궁금해하면서도 그럴수도 있겠지 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요즈음 나는 샨 가족사진들을 보면서 그때를 회상하고 그들의 건강과 행운을 위해 기도하는 때가 많아졌다. 샨 가족도 미국 캐나다 어디엔가 살면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겠지...

                                                                                            2024년 1월 함박눈 내리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