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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왜 우리의 웃터골을 빼앗았는가?
  • 작성자 : 홍정일(49)
  • 작성일 : 2023-11-13
  • 조회 : 65
  • 첨부파일 :

일제는 왜 우리의 웃터골을 빼앗았는가?

[ 전문체육 ]/체육사학 2011/09/06 14:08

전문체육_체육사학_일제는-왜-우리의-웃터골.jpg

  글 조준호(대림대학 사회체육과교수)



인천체육의 성지 웃터골공설운동장(현 제물포고등학교 운동장)은 

인천시민의 애국심발원지(發源地)였다

그곳은 항상 인천시민들의 땀 냄새운동장의 흙냄새그리고 바닷가의 짠 냄새가 뒤섞여 

인천특유의 냄새가 뿜어지는 가장 향토색이 짙은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한·일간의 야구대결이 있을 때면 인천시민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을 가슴에 품고 

그들과 함께 달렸다서슬 퍼런 일제강점기였지만 웃터골에서 만큼은 야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를 응원할 수 있어 뜨겁게 용솟음치는 애국심을 달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웃터골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천연분지였기에 정확한 생성 시기는 파악하기 어렵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천부민과 함께한 웃터골은 개항기 스포츠의 산실이었다

그곳을 확장재 확장 하고 단어 앞에 공설(公設)이라는 단어만 붙여 어느 순간부터 웃터골은 

인천의 공설운동장이 되었고 일제강점기 그곳은 인천시민들보다 일본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1933년 발간된 인천부사(仁川府史)에 의하면 1905년의 인천인구는 일본인이 

12,712한국인이 10,866중국인이2,665구미인이 88명으로 한국인들보다 일본인이 

더 많았다그래서일까일제강점기 인천살이는 살기는 좋아도 흥왜놈의 등살에 못살 곳이었다

그곳으로 서양의 스포츠는 자연스레 미끄러져 들어왔다.

 

1.jpg

 

 그림1.인천체육의 성지 웃터골운동장 

본 고

이는 일제의 간악한 속내의 결정판이었다이에 대한 인천의 부민들은 크게 불평(不評)하였다

하지만 힘이 없는 인천부민들의 외침은 그저 메아리가 될 뿐이었다

일제는 이와 같이 웃터골을 빼앗았고 인천부민들에겐 새로운 제안을 한다바로 시 외곽지역인 

도산정에 새롭게 공설운동장을 신설해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일제가 동경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즉 일제 스스로를 위해 

공설운동장을 도시 외각 지역에 건립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인천체육의 성지인 웃터골을 빼앗기고 새로운 공설운동장을 반기는 인천부민들은 아무도 

없었다. 슬픔을 넘어 분노(조선일보, 19353월 26)하였다. 하지만 나라 잃은 인천부민

들의 힘없는 메아리는 거기까지였다그렇게 일제는 우리에게서 웃터골을 빼앗아갔다.

 

2.jpg

    그림2. 인천 각 학교 연합대운동회(자료출처: 인천문화재단, 2006: 138)

3. 
3. 
잘못된 진실?

웃터골을 빼앗은 일제는 공설운동장 신설을 제안하며 도시의 외곽지역인 도산정에 

인천공설운동장 건립을 계획하게 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웃터골공설운동장은 중학교기지로 제공하고 내년부터 도산정에 대 공설운동장을 

신설한다는 것은 보도해온 바와 같거니와 어제 도당국으로부터 그것이 인가되어 

지난 21일 오전 9시부터 입찰을 개시하여 결국 삼만팔천원에 경성 

시전조(柴田組)에 낙찰되었다는데 이는 도당국의 예산보다 6천원을 초과한 

것이라 한다(동아일보, 1935 8 23일자). 


이러한 계획을 통해 인천의 도산정(도원동)공설운동장은 1936년 8월 2일 개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도산정의 공설운동장 개장을 기념하기 위해 일제는 시민 

대운동회를 개최하였다

하지만 인천의 대다수의 향토서적들은심지어 인천의 역사를 자부한다는 한 공공건물의 

개항장 연표에는 1934년 6월 30일을 도원동 공설운동장의 준공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신문기사에서 확인 했듯이 도원동 공설운동장을 신설하겠다는 도당국의 인가

가 1935년 8월 21일에 허가를 받았다는 신문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 2년의 시기가 

잘못 표기되어 있었던 것이다이렇듯 공설운동장과 관련된 잘못된 진실은 체육사에 

소홀했던 우리의 책임이 크다.

 

       그림3. 2011년 현재 인천개항문화연표

웃터골운동장은 그렇게 일제에 빼앗겼으며 그곳은 그들만의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정작 내 나라의 주인들은 체육성지(聖志)를 잃고 일제의 힘의 논리에 의해 새로운 

장소인 도산정으로 공설운동장을 이전하여야 했다. 

최근 독도에 관해 일본은 매우 특이한 주장을 내세우며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일제의 그 논리가 말도 안 되는 것이라 하여도 우리는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독도 역사 찾기와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멀리보고 체계적으로 준비

하는 일본, 그들에게 철저히 빼앗겼던 웃터골의 교훈을 통해 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대한민국, 힘 있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대(大)한국인 모두가 하나로 뭉쳐야 할 것이다.

 

ㅡ 인터넷에서 발췌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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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댓글 1

  • 홍정일(49)

    2023-11-14

  • 조선왕조 519년간 27명의 왕조들의 역사에 관심이 많아
    검색을 해 ㅡ조선왕릉 문화재청ㅡ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왕조들의 삶과 왕조들의 릉이 있어 옮겨오기 시작하여
    경복궁과 창덕궁과 창경궁과 덕수궁을 탐방 하면서 그안에 있는 전각들과
    함께 비원과 종묘와 동묘까지 사진을 담아 홈에 올렸습니다.

    인천여고 개교100주년 행사를 준비하던 중 그당시 홈페이지 관리자님께서
    중구자유공원 테마 도보여행을 하자하여 일제강점기 시대에 세워진 건물들에
    대하여 중구청에가서 자료들의 책자를 가져와 2008년 9월27일 중구 옛추억 탐방을
    IT회원과 총동과 함께 하기시작 2008년 10월10일 해외동문과 함께 또 했습니다.
    그후 사진을 담아 홈페이지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2018년에
    홈페이지를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어 옮겨오는 과정에서 그대로
    옮겨지지 않아 새로 올리기 시작하여 이제야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곳에 머물러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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