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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자유공원 (옮겨온 글)
  • 작성자 : 홍정일(49)
  • 작성일 : 2023-11-19
  • 조회 : 63
  • 첨부파일 :
자유공원
서로가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은
하나의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자유공원(1888년)은 응봉산 정상 일대에 조성되어져 있으며
서울 최초의 공원인 종로2가 탑골공원(1897년)보다 
9년이나 먼저 앞서있고 서구식 공원으로서는 우리나라 최초이다.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 상 앞엔 
인천 송영길 시장의 화환이 세워져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수복 61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갖다놓은 것 같다.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한 것은 9월 15일이다.
 한미수교(1882년 5월 22일~1982년 12월 14일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사업 위원회) 
100주년 기념탑이 들어선 자유공원엔
“삼화조선(三和造船)을 경영해 큰돈을 벌었던 
석정(石汀) 이후선(李厚善) 사장이
30여 년간 자유공원을 산책하며 건강을 지켜온 데 대한 보은으로써 
시민의 휴식처가 될 58평 규모의 2층으로 누각을 지어 인천시에 기증한 분이다. 
석정루(石汀樓)는 1966년 6월 23일 윤갑로(尹甲老) 시장 등
여러 내외빈 참석 하에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당대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 
서예가 동정(東庭) 박세림(朴世霖) 선생이 현판을, 
우초(又礁) 장인식(張仁植) 선생이 현액을 썼다.
제물포 고에서 유수한 평론가와 시인들을 길러낸 
시인 최승렬(崔承烈) 선생이 
‘기림’이라는 제목의 아름다운 제영(題詠)을 남겼다.”
 그러고 보니 인천엔 서예가로 유명한 분이 몇 분 계신다.
그림은 인물·화조·산수 등 폭넓은 영역을 다루었으나 
특히 인물화 및 궁중 초상화와 일반 초상화를 잘 그렸던 
한말 최후의 어진화가(御眞畵家)이신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 화백을 필두로
육조체(六朝體)의 검여 유희강 선생, 
해서(楷書)의 대가 동정 박세림 선생, 
한글 궁체와 전서, 예서에 능한 우초 장인식 선생, 
그들의 뒤를 이어 초서에 능한 송석 정재흥 선생, 
한림(翰林) 이규환 선생,
‘안로공체’로 돋보이는 무여 신경희 선생이 괄목할만한 서예가로 등장하고 있다.
그 뒤를 이은 오늘의 대가가 동정 박세림의 수제자이자 
전각에 조예가 깊은 청람 전도진 선생이다.
그밖에 한학에 밝으며 즉흥적으로 한시 짓기를 즐겨하신 한학자이시자 
우주적인 원을 상징하는 소강체를 창안하신 소강(小岡) 부달선 선생이 계시고
소강 선생의 수제자인 대한민국 미술대전 5회 입선에 2회 특선한 
춘정 이근우 선생이 활동하고 계시고
약관의 나이에 대한민국 서예대전 5회 입선에 특선을 한 
봉강 최규천 선생이 활동하고 있고
더불어 사단법인 한국서예협회 인천광역시지회 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계신다.
밤이라 불야성 같은 월미도와 연안부두가 한눈에 들어와
화려한 야경으로 눈이 부시다.
바람은 차지만 연인들이 껴안고 사랑의 깊이를 느끼는 사이
날이 갈수록 꽃단장으로 환한 자유공원!
상점이 없어진 자리엔 
야외무대와 비둘기의 안식처 대신 새로운 조형물이 설치되어져 있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평화보다 비둘기의 배설물에 의한 문화재의 심각한 부식 때문에 
하나의 해결책으로 생겨난 것 같다.
올 때마다 점점 정성을 들인 모습들이지만
왠지 과거의 역사가 되살아나지 않은 것 같아 허전하다.
쉼터공간과 웰빙을 위한 운동기구가 잘 갖추어진 산책길이지만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빛바랜 상처처럼 발걸음만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차이나타운의 거리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고
월미도엔 유람선과 놀이기구가 잘 갖추어져 있고 
군부대를 이전시킨 후 
전국의 명소 등 한국 전통정원이 축소되어 조성된 ‘월미도 전통정원’이 있어
마음 놓고 소리를 지를 수 있어 좋다.
70년대 후반까지 행락객들을 불러들인 
자유공원 놀이기구들이 줄지어 서있었지만
수봉공원으로 옮긴 후로부터는
주인 잃은 발걸음만 하나 둘 늘어나고 말았다.
동인천에서 자유공원을 오를 때 대한서림을 거쳐 
대동화방 상권을 중심으로
하나의 풍경처럼 자리하고 있는 분식집과 탁구장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줄 아는 롤러스케이트장 안에서 땀을 흘릴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어느 도인이 자유공원의 또 다른 상징물인 무지개 형태의 문을 뜻하는 
홍예문(虹霓門)을 건너뛰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고
길거리 점집들이 청춘남녀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역동성은 고요에 묻혀 조용하고
고요는 역동성 앞에 침묵으로 잠을 청하고 있어
침묵과 고요를 흔들어줄 바람이 필요하다.
70~80년대를 수놓았던 
동인천역 앞 용동 큰 우물 거리에 몰려든 청춘들의 이야기가 
지금도 귓가에 맴돌며
구름처럼 지나갔던 자리가 이제는 휑한 바람만 가슴에 모여들고 있다.
시대에 따라 상권이 무섭게 이동하거나 분산 배치되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자 역사의 물줄기이지만
일세를 풍미했던 동인천역에서
주안역으로 옮겨간 상권
부평역으로 옮겨간 상권
구월동으로 옮겨간 상권
연수동으로 옮겨간 상권
논현동으로 옮겨간 상권
바람이 부는 곳은 
어김없이 뜨거운 생명이 뛰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2011년 9월 29일 목요일
 
- 옮겨온 글-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글. 
중구의 변화한 모습과 얼킨사연들.
옛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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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댓글 1

  • 홍정일(49)

    2023-11-19

  • 동정 박세림 선생님, 무여 신경희 선생님, 송석 정재흥 선생님, 청담스님
    위에 올려 놓은 글에서 이분들의 성함이 거론 되어
    반가워서 그분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 올려 보았습니다.

    위에 올려져 있는 글을 칸 띄어쓰기를 해서
    정리하여 올리려고 하는데
    수정이 잘 되지 않아서 그냥 올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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